진짜 마당극이 되려면

 

  해마다 수천 명의 관객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공연하는 MBC 마당놀이란 것이 있다. 이를 보면 무대극과는 다른 마당 판의 양식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럼에도 '진짜 마당극은 저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우리는 '저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일까?

  마당극 연출에 있어서는 내가 가장 앞선 연배의 한사람일텐데, 그러한 내가 맨 처음으로 '저게 진짜다'라고 감탄한 작품은 80년 초 광주항쟁 직전에 공연된 극단 「광대」의 <돼지풀이>였다. 당시 광주의 분위기는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극단 광대의 창립공연이기도 했던 <돼지풀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이전에 해왔던 작업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 마당극'이 드디어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느낌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70년대 후반에 주로 했던 마당극 작업의 대본은 기성 희곡작가들이 이미 써놓은 것들이었다(윤대성씨의 작품 등). 그것들 중에서 우리의 관심에 근접한 작품들을 골라 일종의 형식실험을 했던 것인데, 원래는 무대극으로 쓰여진 희곡을 갖고 잔디밭이나 운동장에서 공연을 하자니까 자연 마당 판에서의 독자적 기법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연극계 상황을 보면 무대극에 계발 삽입되거나 탈춤이 극중에 잠깐 등장하기만 해도 평론가들이 '민속의 현대화'니 '재창조'니 하면서 추켜세우던 시절이라, 그만큼 우리 전통연희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던 때였다. 그러한 때 내가 기성희곡을 가지고 새로운 상황 즉, 마당 판에서 공연을 해보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사실 전혀 엉뚱한 이유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연극을 하려해도 공연할 무대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마당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시청각실이란게 있어서 소극장 무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작품 내용이 문제가 되거나 하면 학교당국이 시청각 실을 안 열어 주는 통에 공연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여름방학 같은 때 농촌 봉사활동을 가서 연극 같은 것을 해보려 해도 마땅한 극장은커녕 변변한 무대조차 없던 터라, 그러한 상황에서 공연할 수 있는 장소란 학교 운동장이나 마을 공터 같은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마당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까 무대에서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마당극의 원리랄까 기법은 어떠한 것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때 각 대학들에 막 생겨나기 시작한 탈춤 반들의 활동은 우리에게 뭔가를 시사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가면극의 원리 혹은 탈춤의 미학은 아직 정립돼 있지 않았으므로 나의 작업들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 고나 할까, 그때그때 하나씩 마당 판의 연출원리를 풀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당시의 내 작업들과 비교하여 <돼지풀이>를 최초의 원판 마당극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돼지풀이>는 광주나 인근의 농촌지역의 현실로부터 문제를 직접 추출하여 참가자들 모두가 공동으로 창작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는 '연극은 왜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실천적 답변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의 연출작업만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전문적인 양식실험이었다. 당시의 내 생각은 정치 사회적 현안을 담은 연극을 공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난관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색다른 공연방식, 표현방식을 개발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돼지풀이>는 농촌의 현실이 이러하고 돼지파동이 심각한데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현장을 돌면서 선전을 하고 싸워야겠다는 목적, 즉 문화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극단 광대는 70년대 탈반출신들이 모여 만든 「한 두레」와 더불어 오늘날에 이어지고 있는 문화 패들의 활동성격을 최초로 올바르게 제시한 단체이며, <돼지풀이>는 문화운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동의 작업을 통해 공동으로 사안에 대처해 나간 최초의 작품들중 하나인 것이다.

  또한 <돼지풀이>에는 당면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현장의 관중들을 만나고 하는 과정에서 그에 맞게 적용된 새로운 표현양식들이 가득 차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풀이'의 의미가 매우 적확하게 복합적으로 활동되고 있다. <돼지풀이>에서의 '풀이'는 죽은 돼지의 한과 혼을 풀어준다는 의미이면서 돼지파동 문제로 얽혀 있는 복잡한 현실사안을 싸워서 해결해 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가 무속적, 신명적 의미라면 후자는 사회적, 과학적 의미라고나 할까? <돼지풀이>는 단순한 민속적 차원의 기원이

아닌 현실문제의 해결이라는 적극적 실천의 의미까지를 함께 아우르고 있음으로 해서, 양식적으로는 도살당한 돼지의 죽음을 풀어내는 것이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돼지파동에 얽혀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사회적 싸움으로 나아가는 최초의 마당 굿이다. 그런 의미에서 <돼지풀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돼지풀이>에서 쓰이고 있던 기법들에는 마당 판의 활력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다시금 생각게 하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 그 부분은 다른 글 (「마당극에서 마당 굿으로」중 후분바 채희완의 글)에서 꽤 상세하게 언급된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 웃기기와 울리기